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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도 41,000피트에서 연료가 떨어진 에어캐나다 143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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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1983년 7월 23일 저녁 8시 조금 넘어서, 캐나다 상공 고도 41,000피트.
에어캐나다 143편 조종석에 경고음이 울림. 왼쪽 엔진 연료 압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경고.
기장 로버트 피어슨과 부기장 모리스 캥탈은 처음엔 연료 펌프 고장 정도로 생각했음. 연료는 충분히 실었다고 계산이 돼 있었으니까.
곧 오른쪽 엔진에도 같은 경고가 뜸.그리고 왼쪽 엔진이 꺼짐. 이어서 오른쪽 엔 도 꺼짐.
조종석에 낯선 소리가 하나 울렸음. 두 조종사 모두 한 번도 들어본 적 없는 소리. '모든 엔진 정지' 경고음이었음. 훈련에서도 들을 일이 없던 소리였음.
비행기는 거의 새것이었음. 들여온 지 넉 달도 안 된 최신형 보잉 767. 출발 전에 연료도 넣었음. 계산도 했음. 그런데 연료가 없었음.
승객과 승무원 69명을 태운 100톤짜리 여객기는 그 순간부터 엔진 없이 하늘에 떠 있는 글라이더가 됨. 남은 시간은 17분 그 끝에, 이 비행기는 자동차 경주가 한창인 활주로로 내려가게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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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2/11

[그날 아침, 몬트리올 공항]
시간을 조금 돌려봄.
이 비행기는 몬트리올에서 오타와를 거쳐 에드먼턴까지 가는 길이었음. 근데 출발 전부터 조종석 연료 게이지가 고장 나서 빈칸이었음. 정비 과정에서 혼선이 생긴 데다, 하나 있던 예비 부품마저 불량이었음.
그래서 옛날 방식으로 재기로 함. 날개 밑 탱크에 긴 막대자를 꽂아서 연료가 몇 리터인지 직접 재는 것.
여기까진 괜찮았음. 사고는 그다음 계산에서 터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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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3/11

비행기는 연료를 무게로 계산함. 연료 1리터는 약 0.8kg.
근데 이날 계산에 들어간 숫자는 1.77이었음. 리터를 '파운드'로 바꿀 때 쓰는 숫자임. 킬로그램 자리에 파운드를 넣어버린 거임.
에드먼턴까지 필요한 연료는 약 22,300kg. 실제로 실린 건 약 10,100kg. 절반도 안 됨. 근데 계산서에는 충분하다고 나와 있었음.
중간 기착지 오타와에서 또 쟀는데, 똑같은 실수를 또 함. 컴퓨터에는 20,400kg이 입력됨. 실제로는 9,250kg.
그렇게 비행기는 연료를 더 넣지 않고 떠남. 그리고 몇 시간 뒤, 고도 12,500m에서 그 숫자의 대가가 돌아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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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4/11

[하늘 위, 엔진 정지 직후]
엔진이 꺼지면 연료만 없는 게 아님. 이 비행기는 엔진으로 전기를 만들었음.
최신형 767은 계기판이 전부 전자 화면이었는데, 그 화면들이 꺼짐. 남은 건 작은 예비 계기 몇 개뿐. 그마저도 비행기가 얼마나 빨리 내려가고 있는지 알려주는 계기는 없었음.
비상 매뉴얼을 펼쳤는데, '엔진이 전부 꺼졌을 때'라는 항목이 아예 없었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거임.
비행기 배 밑에서 작은 프로펠러 하나가 튀어나와 바람으로 돌기 시작함. 비상용 발전기임. 이걸로 겨우 조종에 필요한 최소한의 힘만 나왔음. 조종간은 무거웠고, 날개 보조 장치는 펼칠 수도 없었음.
비행기는 1분에 약 600m씩 내려가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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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5/11

[활공 중, 고도는 계속 떨어지는 중]
처음엔 근처 큰 공항인 위니펙으로 방향을 틀었음.
근데 부기장 캥탈이 고도와 거리를 계산해 보니 답이 안 나옴. 이 속도로 떨어지면 위니펙까지 못 감.
그때 캥탈이 떠올린 곳이 있었음. 김리.
캥탈은 예전에 캐나다 공군에서 조종 훈련을 받았는데, 그 훈련을 받은 곳이 바로 김리 공군 기지였음. 거기라면 긴 활주로가 있고, 지금 위치에서 더 가까웠음.
기장은 김리로 가기로 함.
문제가 하나 있었음. 김리 기지는 이미 문을 닫은 지 오래였음. 그 활주로가 지금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조종석의 두 사람은 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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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6/11

그날 김리는 옛 공군 기지가 아니었음. 활주로를 개조해서 만든 자동차 경주장이었음.
마침 그날은 위니펙 스포츠카 클럽의 '가족의 날'이었음. 활주로 일부에서는 카트 경주가 열렸고, 다른 쪽은 드래그 레이스 코스로 쓰였음. 캠핑카가 서 있었고, 사람들은 바비큐를 굽고 있었음. 자전거를 탄 아이들도 활주로 위를 돌아다녔음.
여름 저녁, 평범한 주말 풍경이었음.
엔진이 꺼진 비행기는 소리도 거의 없었음. 그 하늘 위에서 100톤짜리 여객기가 조용히 내려오고 있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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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7/11

'너무 높고 너무 빠름. 기장은 비행기를 옆으로 틀었음'
김리 활주로가 보였을 때 또 문제가 생김. 비행기가 너무 높고 너무 빨랐음.
이대로 내려가면 활주로를 지나쳐버림. 한 바퀴 돌면서 고도를 줄이자니 그럴 높이가 안 남았음.
여기서 기장 피어슨의 과거가 빛을 봄. 피어슨은 글라이더를 타는 사람이었음. 엔진 없는 비행기를 오래 몰아본 사람.
그는 글라이더 조종사들이 쓰는 기술을 꺼냄. '포워드 슬립'. 조종간과 방향키를 반대로 틀어서 비행기를 비스듬하게 옆으로 미끄러지게 하는 기술임. 비행기 옆구리로 바람을 맞으니 속도는 안 붙고 고도만 확 떨어짐.
100톤짜리 여객기로 이걸 한 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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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8/11

조종석 앞 유리 너머로 활주로가 비스듬히 기울어진 채 빠르게 커져 옴.
바퀴는 전기가 없어서 중력으로 떨어뜨려 내렸음. 뒷바퀴는 잠겼는데 앞바퀴는 끝까지 안 잠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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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9/11

비행기가 땅에 닿았음.
피어슨은 브레이크를 세게 밟음. 타이어 두 개가 터짐. 잠기지 않은 앞바퀴가 접히면서 비행기 코가 활주로 바닥에 처박힘. 코가 바닥을 긁으면서 뒤로 불꽃이 길게 튐.
그 앞에, 자전거를 탄 소년 두 명이 있었음.
피어슨은 나중에 그 아이들 얼굴에 떠오른 공포가 보였다고 말함.
근데 앞바퀴가 접힌 게 오히려 비행기를 살렸음. 코가 바닥을 긁으면서 브레이크 역할을 한 거임. 활주로 한가운데 설치된 쇠 가드레일도 비행기가 옆으로 새지 않게 붙잡아 줌.
비행기는 구경하던 사람들과 캠핑카 바로 앞에서 멈춤. 30m도 안 되는 거리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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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10/11

멈추자마자 비행기 코 쪽에서 작은 불이 남.
달려온 건 소방차가 아니라 경주장 사람들이었음. 레이서와 경기 진행 요원들이 경주용으로 갖다 둔 소화기를 들고 와서 불을 끔.
승객들은 비상 미끄럼틀로 탈출함. 근데 앞바퀴가 접혀서 비행기 꼬리가 하늘로 들려 있었음. 뒤쪽 미끄럼틀이 땅까지 충분히 안 닿았고, 거기서 내리던 사람들이 다침.
부상자 10명. 다 가벼운 부상이었음.
사망자는 0명. 비행기 안 69명도, 활주로 위 사람들도 전원 무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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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11/11

조사 결과는 이랬음. 조종사 개인의 실수만이 아니라, 연료 계산을 누가 책임지는지조차 분명하지 않았던 항공사 시스템의 문제였음.
그래도 처음엔 두 조종사가 징계를 받음. 피어슨은 6개월 강등, 캥탈은 2주 정직. 나중에 항소해서 둘 다 뒤집힘.
1985년, 두 사람은 국제항공연맹이 주는 '탁월한 조종술 상'을 받음. 이 상을 받은 첫 번째 사람들이었음.
비행기도 고쳐져서 다시 하늘로 돌아감. 그 뒤로 25년을 더 날다가 2008년에 은퇴함. 사람들은 이 비행기를 '김리 글라이더'라고 불렀음.
사고는 숫자 하나에서 시작됐음. 1.77과 0.8. 그걸 막은 건 기장이 주말마다 타던 글라이더 경험과, 부기장이 젊은 시절 훈련받던 기지에 대한 기억이었음.
큰 사고는 작은 숫자에서 시작되고, 그걸 막는 건 대개 오래 쌓아둔 경험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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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0개

hyuk88zz · 10월 10일 #1

와 그냥 기장과 부기장 덕분에 살았구나
공군기지를 생각해낸 부기장이랑 글라이더가 취미였던 기장...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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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efort_ · 10월 10일 #2

재밌는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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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10일 #3

감사합니다 자주 놀러와 주십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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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ujin_6212 · 10월 10일 #4

드리프트 비슷한 기술을 구사했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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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bbb884488 · 10월 10일 #5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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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1432020 · 10월 10일 #6

김리 글라이더 유명하죠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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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slightrain · 10월 10일 #7

욕 나오게 어이가 없음.
미친 ㅅㄲ들이 일찍부터 미터법으로 통일하지. kg과 파운드를 혼동해서 쓰니까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아폴로 우주선 로켓 발사 전에 폭발한 사고도 내가 듣기로는 부품 하나의 단위가 cm과 inch가 헷갈려서 그랬다고 들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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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ng1432020 · 10월 10일 #8

NGC 항공사고 수사대 에피소드 중 훈훈하게 끝나는 몇 안되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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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kwon · 10월 10일 #9

밥 피어슨 기장은 에어캐나다 퇴직 후 아시아나 항공으로 이직하셨었죠. 어쩌면 이 글 읽으신 분들 중 김리 글라이더의 주역이 조종간을 잡은 비행기를 타신 분들도 있을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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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ean_nymph_52 · 10월 10일 #10

ㅠㅠㅠㅠㅠㅠ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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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penwindow · 10월 10일 #11

조종사도 확인차 연료 계산을 했는데, 역시 엔지니어들하고 똑 같이 파운드, kg을 헛갈려서 틀리게 계산했슴.
나중에 똑 같은 상황을 가정하게 시뮬레이션으로 많은 조종사들이 시도해 봤는데 아무도 성공시키지 못 했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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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dc8ang · 10월 10일 #12

리스펙! 위기대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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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tchellkim1988 · 10월 10일 #13

잘 읽었습니다^^참고로 포워드 슬립은 글라이더 조종사들만 쓰는 기술이 아닙니다. 프라이빗 ASEL 교육 과정부터 들어가 있는, 비행기 교육을 받았다면 모두 아는 필수 스킬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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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k.a.alias.cc · 10월 10일 #1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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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_.jju · 10월 10일 #15

다큐 9분으로 봤었는데 기장되기까지가 장난아니었던분으로 기억..
비슷한 느낌으로 콴타스 32편 A380 엔진폭발사건이랑 비슷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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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ng2_park · 10월 10일 #16

RAT(Ram Air Turbine). 저 조그만 프로펠러 아니었으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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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r._.jju · 10월 10일 #17

거기도 기장님이 엔진 다날라가고 유압날라갔는데도 무사착륙으로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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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ikyung.kim.100 · 10월 11일 #18

하여간 산수 못하는 캐내디언들…내력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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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anggh315 · 10월 11일 #19

예전에 읽은 기억이 리더스 다이제스트? 미터법과 혼동되니 파운드법 쓰자는 결론이었던ᆢ
근데 여객기 고도는 만m 삼만ft인데너무 많이 올라갔고ᆢ 전기가 없으면 유압도 없어 날개조작 작동이 안될텐데 잘 했군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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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wachoman · 10월 11일 #20

잘 읽었습니다. 읽다 보니
1999년 화성 기후 탐사선 사건이 기억납니다.
제작사가 파운드로 전달한 걸 나사가 뉴턴 단위로 이해해서 긴 시간과 1억 달러가 넘는 돈이 투입된 우주선이 폭발한 사고입니다.
소통에 대해 수업할 때 예로 든 사고인데 이제 염치 없지만 선생님이 올려주신 에어 캐나다 사고도 활용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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