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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클린 원정대, 169년 뒤 찾은 배 두 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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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가 10개 글로 이어 쓴 이야기를 한 페이지로 모았습니다. 본문 아래에는 댓글 2개를 원래 순서대로 붙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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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개 글 · 댓글 2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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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북극에서 사라진 배 두 척, 169년 뒤 바다 밑에서 멀쩡하게 발견됨"
1845년 5월 19일, 영국 켄트 주 그린하이드 항구.
배 두 척이 떠남. 이름은 에레버스호와 테러호. 목적지는 북극.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북쪽 바닷길, 이른바 북서항로를 찾는 게 임무였음.
대장은 존 프랭클린 경. 북극 탐험 경력이 있는 해군 장교였음.
출항할 때 탄 사람은 134명. 그린란드에서 아픈 선원 5명을 집으로 돌려보내서 129명이 됨.
돌려보내진 그 5명이 이 원정대에서 살아남은 전부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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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2/10

"그 시대에 만들 수 있는 최고의 배였음"
준비가 허술했던 게 아님. 정반대였음.
두 배에는 기차 기관차에서 떼어 온 증기기관이 달려 있었음. 바람이 없어도 스크루를 돌려서 갈 수 있었던 것. 뱃머리는 굵은 들보와 철판으로 보강해서 얼음을 밀고 나가게 만들었음.
배 안에는 증기로 데우는 난방이 돌았고, 배마다 책이 1,000권 넘게 실린 도서실까지 있었음.
식량은 3년 치. 그중에 통조림이 8,000개였음.
통조림은 그때 최신 기술이었음. 몇 년씩 안 썩는 음식이라니, 장거리 탐험에는 꿈같은 물건이었던 것.
이 통조림이 140년쯤 뒤에 범인으로 지목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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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3/10

"통조림 계약은 출항 7주 전에 맺어짐"
통조림을 납품한 사람은 스티븐 골드너라는 업자였음.
계약 날짜가 1845년 4월 1일. 출항이 5월 19일이니까 딱 7주 전임.
7주 안에 통조림 8,000개를 만들어야 했던 것.
당시 통조림은 뚜껑을 납으로 땜질해서 막았음. 급하게 만들다 보니 마감이 엉망이었다고 함. 훗날 발견된 깡통들을 보면 납땜이 두껍고 지저분하게 발려 있었음.
납이 음식에 닿았을 수 있다는 얘기임. 이건 뒤에서 다시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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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4/10

"7월 말, 고래잡이배가 본 게 마지막이었음"
1845년 7월 말, 그린란드와 캐나다 사이 배핀만.
고래잡이배 선원들이 얼음 옆에 대기 중인 에레버스호와 테러호를 봄. 얼음이 풀리길 기다리는 중이었음.
유럽 사람이 이 원정대를 본 건 그게 마지막임.
그 뒤로 소식이 끊김.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아무 연락이 없었음. 식량이 3년 치니까 처음엔 다들 기다렸음.
3년째가 되자 대장의 아내 제인 프랭클린이 해군을 압박하기 시작함. 정부는 2만 파운드 현상금을 걸었음. 지금 돈으로 수십억 원임.
수색대가 줄줄이 북극으로 들어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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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5/10

"첫 겨울에 벌써 세 명이 죽었음"
수색대가 처음 찾은 흔적은 비치섬이라는 작은 섬이었음. 원정대가 첫 겨울(1845~46년)을 난 곳.
거기에 무덤 세 개가 있었음.
존 토링턴, 1846년 1월 1일 사망. 존 하트넬, 1월 4일 사망. 윌리엄 브레인, 4월 3일 사망.
출항한 지 여덟 달도 안 됐는데 세 명이 죽은 것. 식량도 넉넉했고 배도 멀쩡했을 때임.
뭔가 일찍부터 잘못되고 있었다는 신호였음. 근데 그게 뭔지는 그때 아무도 몰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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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6/10

"배가 얼음에 갇힘. 그리고 1년 7개월 동안 안 풀림"
1846년 9월 12일, 킹윌리엄섬 앞바다에서 두 배가 얼음에 갇힘.
북극에서 겨울에 배가 어는 건 흔한 일이었음. 여름이 오면 풀리니까 기다리면 됨.
근데 다음 여름에 얼음이 안 풀렸음.
1847년 6월 11일, 대장 프랭클린이 죽음. 원인은 기록에 없음.
배는 계속 갇혀 있었음. 한 해 겨울을 더 남. 그사이 사람이 계속 죽어 나감.
우리가 보기에 이 원정의 운명은 여기서 갈렸음. 최고의 증기기관도 철판 뱃머리도 얼음이 안 풀리면 쓸 데가 없었던 것. 배가 좋았던 거지, 얼음을 이길 수 있었던 게 아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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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7/10

"돌무더기 속에서 나온 쪽지 한 장"
원정대가 직접 남긴 기록 중에 발견된 건 사실상 쪽지 한 장임. 1859년 수색대가 킹윌리엄섬 돌무더기 안에서 찾아냄.
쪽지는 1848년 4월 25일에 쓴 것. 내용은 이럼.
프랭클린 경은 1847년 6월 11일에 사망. 지금까지 장교 9명과 선원 15명이 죽음. 4월 22일에 배를 버렸음. 생존자 105명은 내일 백강(Back River)을 향해 출발함.
계산해 보면 맞음. 129명에서 24명이 죽어서 105명.
배를 버린 날은 갇힌 지 1년 7개월째였음.
105명은 보트를 썰매에 싣고 얼음 위를 걷기 시작함. 남쪽 캐나다 본토까지 수백 km를.
아무도 도착 못 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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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8/10

"이누이트는 다 보고 있었음. 영국은 안 믿었음"
쪽지가 발견되기 5년 전인 1854년, 탐험가 존 레이가 그 지역 이누이트 사람들을 만남.
이누이트는 봤던 걸 말해줌. 백인들이 보트를 끌고 남쪽으로 걸어가다가 하나둘 쓰러져 죽었다고. 굶어 죽었다고.
그리고 한 가지를 더 말함. 마지막에는 죽은 동료의 몸을 먹은 흔적이 있었다고.
레이가 이걸 그대로 보고하자 영국이 뒤집어짐. 영국 해군이 그럴 리 없다는 것. 소설가 찰스 디킨스까지 나서서 그럴 이유가 전혀 없다고 반박하는 글을 씀.
증언한 쪽이 거짓말쟁이 취급을 받은 것.
근데 140년쯤 뒤에 유골을 조사해 보니 뼈에 칼자국이 있었음. 2015년 연구에서는 뼈 35개에서 끓인 흔적까지 확인됨. 이누이트 말이 맞았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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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9/10

그래서 범인이 통조림이었나? 요즘 답은 "그것만은 아님"
1980년대에 캐나다 연구팀이 비치섬 무덤 세 개를 열어봄. 뼈에서 납이 나왔는데, 비교 대상인 이누이트 유골의 6~9배였음.
여기서 유명한 이야기가 생김. 엉터리로 땜질한 통조림 때문에 납중독에 걸려 전멸했다는 것.
근데 그 뒤 연구들이 제동을 걺. 2013년 연구는 그 납이 원정 중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쌓인 것으로 봤음. 그 시대 영국 사람들은 원래 납에 많이 노출돼 있었음.
지금은 범인이 하나가 아니라고 봄. 추위, 굶주림, 괴혈병, 결핵이 겹쳤다는 것.
통조림이 무죄라는 건 아님. 다만 "통조림 하나 때문에 전멸"은 너무 깔끔한 이야기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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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myohan_cuts · 10월 6일 10/10

"배는 169년 뒤에 발견됨. 이누이트가 말하던 그 근처에서"
2014년 9월, 캐나다 수색팀이 바다 밑에서 에레버스호를 찾음. 출항 169년 만임. 2년 뒤에는 테러호도 찾았는데, 수심 24m에서 놀랄 만큼 온전한 상태였음.
배를 찾는 실마리는 이누이트가 대대로 전해온 이야기였다고 알려져 있음. 160년 전에 안 믿었던 바로 그 증언들임.
129명은 그 시대 최고의 기술을 다 들고 갔음. 근데 원정대가 죽어간 바로 그 섬에서 이누이트는 멀쩡히 살고 있었음.
장비는 최고였는데, 그곳에서 사는 법을 아는 사람들한테 묻지를 않았음. 진실을 말해줬을 때도 듣지 않았음.
제일 좋은 장비를 가진 쪽이 아니라, 먼저 와 있던 사람한테 물어본 쪽이 살아남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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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개

bzbzz.meadery · 10월 7일 #1

첫 희생자 3명의 시신은 거의 완벽히 보존되어 세상에 알려져있죠..참 안타까운 일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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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psc_meggi · 10월 7일 #2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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